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이니치 문서 (문단 편집) == 역사 == 책의 이름은 이 책의 소유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폴란드계 영국인]] 서적상인 윌프리드 M. 보이니치(Wilfrid Michael Voynich, 1865~1930)의 이름을 따 온 것으로, 작가나 필사가의 인적은 불명이다. 보이니치의 폴란드 이름은 미하우 하브단크보이니치(Michał Habdank-Wojnicz)로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리투아니아]]의 텔샤이(Telšiai)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약사가 되었다. 1885년 [[바르샤바]]의 혁명 조직에 가담했다 1887년 체포되어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인근 지역으로 유배를 당했고, 1890년 탈출하여 [[함부르크]]를 거쳐 [[런던]]으로 이주한 뒤 1897년 즈음에 [[대영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리처드 가넷(Richard Garnett)의 조언을 받아 골동품 서적상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1904년 영국으로 귀화하였으며, 이후 1930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루즈벨트 병원(현재 Mount Sinai West)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2009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독피지의 일부를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종이가 만들어진 시기는 1404년에서 1438년 사이로 추정되었다. 또한 송아지 가죽의 단백질 층상 구조를 정밀 분석한 결과, 문서가 기록되기 전에 같은 종이에 다른 내용이 쓰였다가 지워진 적 없으며 새 종이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대에는 양피지나 독피지가 비싸고 귀했으므로 얇은 칼로 글자를 긁어내거나 씻어서 없앤 뒤 이를 재활용하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가 흔했으나, 보이니치 문서는 재활용되지 않은 종이로 제본되었다. 문서에 대한 기록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추정할 수 있는 이 책의 첫 번째 주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의 전담의였던 야코부스 시나피우스(Jacobus Sinapius, 1575~1622)이다. 보이니치 문서가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15세기 중반보다 백 년 이상 후대의 인물이지만 이보다 이른 시기의 소유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야코부스가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문서 첫머리에 그의 서명이 쓰여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이 문서는 알 수 없는 경로로 프라하의 후기 연금술사였던 게오르그 바레흐(Georg Baresch; Georgius Barchius)의 손에 들어갔다. 이 사실은 그가 [[예수회]] 수사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1602~1680)에게 보낸 [[1639년]] 서신에서 확인된다. 당시 키르허는 [[고전 이집트어]]에 쓰인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사전까지 발간하여 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 {{{-2 …in mea Bibliotheca Sphinx quaedam, Scriptura in cognitorum characterum inutiliter occupasset locum, non abs re judicaui fore, si Oedipo Aegyptiaco aenigma transmitterem soluendum.Traducta itaque ali qua parte, scriptura imitata simili, ex libro quodam uetusto (cuius ocularis inspector, et informator erit praesentium lator) scripturam eam direxi ad Vestram Reuerendam ante sesqualterum annum, eo fine, ut (si placeret Vestrae Reuerentiae in inuesti gatione aliquod industriae collocare, et characteres illos fictionis ignotae, literis notis manifestare) labor ille et suo Oedipo (quatenus tamen res in libro occul tatae, opere tam excellenti dignae forent) et mihi, et communi bono prodesse pos sit, librum enim ipsum itineri longinquo, periculis pleno committere, consul tum non est: Siquidem etiam illud, quod proxima uice missum fuit, Romam non peruenit, ut ex eo colligo, quod tanto tractu temporis, nihil de hoc re scriptum intellexi … Ex pictura herbarum, quarum plurimus est in Codice numerus, imaginum diversarum, Astrorum, aliarumque rerum, faciem chymicorum arca norum referentium, conjicio totum esse medicinalem; qua scientia, post salutem animae, nulla humano generi salubrior. Opus hoc non erit indignum conatu ingenij virtuosi, praesertim in negotio rei non vul garis, ut ex eo judicari potest, quod causa plebeiorum occultandorum, tali industria vix author usus fuisset. Quin imo est valde probabile, ali quem virum bonum, verae Medicinae amantem, (cum in partibus Europaeis vulgarem medendi methodum parum fructuosum depraehendisset) Regiones orientis adijsse, ibique thesauros Artis medicae Aegyptiacos, partim ex mo numentis librorum, tum etiam ex conversatione cum peritis artis adeptos, indeque reportatos, talibus notis in libro eo defodisse. Augent probabilitatem herbae peregrinae, in Volumine depictae, notitiam hominum in partibus Germaniae subterfugientes…}}} > >…제 도서관에 쓸데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알려지지 않은 문자로 쓰여진 사본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복잡한 퍼즐을 이집트의 오이디푸스께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책에 적힌 글자를 매우 섬세하게 필사받았으며, 우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를 직접 확인해 줄 것입니다. 1년 반 전에 우편을 존경하는 당신 앞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제가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만약 당신이 이 문서를 조사하고 정체 모를 문자들을 기존의 알려진 문자와 비교하는 데 쓸 시간을 갖고 계시다면, 이 노력은 오이디푸스와 저 자신은 물론, 공공의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본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책 자체를 길고 위험한 여정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소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 우편이 로마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략)… 코덱스에는 다양한 허브에서부터 화학적인 상징, 별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 다음으로 인류에게 유용한, 의학에 관한 지식이라 사료됩니다. 아마 저자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책의 내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예방책을 해 두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깨어 있는 사람이 의술을 구하러 동양으로 떠나는 모습은 그려볼 만 합니다. 여기 유럽에서 유행하는 의학은 거의 가치가 없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겠지요. 그 사람은 이집트 의학의 정수를 얻어 예술가들과 함께 이 책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책에 수록된 식물들이 이 곳 독일 일대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외래종이라는 점이 신빙성을 더합니다… >---- >바레흐가 키르허에게 보낸 편지(1639) 중 바레흐는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인 이 책이 고대 이집트어를 필사한 문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며, 문서에 적힌 글자 일부를 다시 필사하여 서신과 함께 그에게 보냈다. 비록 오늘날 키르허의 번역물은 대부분 고전 이집트어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오역의 산물로 평가되며, 완전한 상형문자 해독은 [[로제타 석]] 발견 이후에나 가능해졌지만, 그는 당대에는 선구자적으로 콥트어와 이집트어의 관계를 연구했던 사람이었으며 그 밖에 인류학, 역사학, 생물학, 지질학 등 중세의 많은 학술 연구에서 이름을 남긴 학자였으므로 그라면 이 문서를 해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보낸 것이었다. 바레흐가 죽은 뒤 이 문서는 그와 친분관계가 있던 얀 마레크 마르치(Jan Marek Marci; Johannes Marcus Marci, 1595~1667)에게 넘어갔으며, 마르치 역시 이 문서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려 노력하다가 죽기 전인 1665년 다시 키르허에게 보이니치 문서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 {{{-2 …Retulit mihi D. Doctor Raphael Ferdinandi tertij Regis tum Boemiae in lingua boemica instructor dictum librum fuisse Rudolphi Imperatoris, pro quo ipse latori qui librum attulisset 600 ducatos praesentarit, authorem uero ipsum pu tabat esse Rogerium Bacconem Anglum. ego judicium meum hic suspendo…}}} > >…[[페르디난트 3세]]의 체코어 교습을 맡고 있는 라파엘 박사가 전하기를, 그 책은 루돌프 황제가 소장하던 것이었고 책을 가져다 준 심부름꾼에게 600두카트를 주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라파엘이라는 사람은 책의 저자가 영국의 [[로저 베이컨]]이라고 추측했는데, 저는 이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싶습니다… >---- >마르치가 키르허에게 보낸 편지(1665) 중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보이니치 문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실 도서관에서 관리하던 책이었고 야코부스 시나피우스가 루돌프 2세로부터 책을 얻어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나, 실제로 루돌프 2세가 이 책의 소유자였는지 아니면 낭설에 불과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영국의 철학자인 로저 베이컨과의 연관성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베이컨은 13세기 인물이므로 이후의 연대 측정 결과와 모순되어 그가 실제 저자일 가능성은 낮다. 애석하게도 키르허 역시 이 문서는 해독하지 못했는지, 이 문서에 대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마르치가 키르허에게 보낸 편지는 보이니치 문서 안에 동봉되어 어딘가로 이동되었는데, 중간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다시 발견된 것은 약 250년 뒤인 [[1903년]] [[이탈리아]] 로마 근교 프라스카티에 위치한 별장 '빌라 몬드라고네(Villa Mondragone)'였다. 이 건물은 예수회가 매입하여 소유하고 있었으며, 문서는 예수회 사제이자 로마 기숙학교(Collegio Romano)의 교장이었던 피에르 장 벡크(Pierre Jean Beckx; Petrus Beckx)의 장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벡크의 장서는 19세기 중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를 통일]]할 때 교황령을 병합하면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하자 그의 개인 서재로 옮겨간 것으로, 그 이전에는 로마 기숙학교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3년 이전 문서의 행방은 전부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모종의 이유로 키르허나 다른 중간 소유자가 이 책을 로마 기숙학교에 기증하거나 판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보이니치 문서 예일대학교.png|width=100%]]}}}|| || {{{-1 희귀한 고서들이 소장된 도서관인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도서관에 전시 중인 보이니치 문서의 사진.}}} || 서적상인 보이니치는 [[1912년]] [[7월 12일]], 예수회가 재정 문제로 빌라 몬드라고네의 장서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다른 서적들과 함께 이 책과 동봉된 키르허의 편지를 사들이게 되었다. 그는 문서에 흥미를 느껴 그 내용을 세간에 공개하고 자신도 오랜 시간 연구했으며, 이 때부터 여러 학자들이 문서 해독에 참여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보이니치 문서'라고 불리게 되었다. 보이니치 사후에 문서는 그의 아내를 통해 친구 앤 닐(Anne Nill)에게 넘겨졌고, 앤 닐은 다시 다른 서적상 핸스 크러스(Hans Kraus)에게 책을 팔았다. 크러스는 [[1969년]] 책을 [[예일 대학교]]에 기증하여, 지금까지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도서관에서 보관 중에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